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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도자

그리고 갑자기 나는 깊이 느끼게 되었다.
피스토리우스는, 그가 나에게 준 것을 그 자신에게는 줄 수 없었으며 내 눈에 비쳤던 그의 모습도 그의 실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. 그는 길잡이인 자신도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.

- 헤르만 헤세, <데미안>-


때때로 내가 딛어야 할 한 걸음을 걷도록 도와주는 이를 만나게 된다.
그는 나에게 인도자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 '완벽한 모델'은 아니다.
그 또한 흙투성이에 넘어진 흔적도 여럿 있으며 적당히 때 탄 옷을 입고 있다.
하지만 처음에는 모른다.
그가 입은 옷이 너무 하얗게 느껴지고,
그가 하는 추상적인 말들이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고, 
그의 모든 기준들을 옳다고 받아들인다. 처음에는. 
그러나 곧 알게 된다. 그는 나를 다른 어디론가 데려온 인도자였을 뿐이지 목적지 자체는 아니라는 걸. 
그 때에 느끼는 쓸쓸함과 불안함에 덜 당황할 수 있다면, 
'아 이제 안녕히.'라고 말하고 잡은 손을 가볍게 놓을 수 있다면, 
그리고나서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힘들지 않게 고개를 돌릴 수 있다면, 
그렇다면 조금은 어른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?  

by Nausikaa | 2010/03/28 14:30 | 트랙백 | 덧글(1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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